들어가며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과 '신앙'이라는 단어만큼 친숙하면서도 복잡한 개념은 없을 것입니다. 매주 예배당에서 듣는 이 단어들이지만, 과연 우리는 그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성경적 관점에서 믿음과 신앙의 본질을 깊이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믿음의 근본적 정의: 바라는 것들의 실상
히브리서 11장 1절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text{휘포스타시스}$)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구절은 단순히 추상적인 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종말과 부활의 세계에 대한 분명한 확신, 즉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실제적인 믿음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 나라를 바라고, 거기에 모든 삶을 맡기는 태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임박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믿음의 근본 토대가 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배우는 교훈
성경에서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살펴보면, 그것은 결코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께 투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에 자신의 운명과 미래를 온전히 맡긴 것이었습니다.
특히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 앞에서 보인 아브라함의 반응은 충격적입니다. 그는 자신의 미래가 걸린 이삭마저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를 "신앙의 위인"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무익한 종의 실존: 진정한 믿음의 자세
믿음은 곧 "종의 실존을 받아들이는 결단"입니다. 자신이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겨자씨 믿음으로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익한 종'이라는 자세로 돌아서는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자기 무능력에 대한 열등감이나 합리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세계 현실에 대한 정확한 통찰이며, 하나님 앞에서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거룩한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을 의존하게 만드는데, 바로 이런 의존성이 참된 믿음의 본질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의 유일한 길
루터 종교개혁의 핵심 슬로건 중 하나인 "오직 믿음"($\text{솔라 피데}$)은 인간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길이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뿐이라는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로워지려고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셔야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실 하나로 여호와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죄와 불의에서 벗어난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율법의 길과는 전혀 다른 길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이후로 율법의 모든 규정과 규범은 그 구원의 능력을 잃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은 인간의 모든 업적이나 자기 의, 자기 성취가 아닌, 하나님 자신의 능력을 통한 길입니다.
왜곡된 신앙의 형태들을 경계하라
기적과 능력에 대한 오해
예수님은 믿음을 사람에게 나타나는 큰 능력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보셨습니다. "뽕나무를 바다로 옮기는 것과 같은 불가능한 일을 작은 믿음으로 할 수 있다"는 말씀은, 그런 일이 믿음의 본질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초능력적인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도 결국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다. 기적(표적)에 마음을 두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 통치에 진정한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욕망의 투사로서의 거짓 믿음
믿기 힘든 허황한 것이라도 무조건 믿으면 된다는 식의 태도는 믿음이라기보다는 욕망의 투사입니다. 예를 들어 병원 치료를 거부하며 기적적 치유만을 기대하는 것은 참된 믿음과는 거리가 멉니다.
율법주의와 자기 의의 함정
자기 의에 빠진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하게 됩니다. 율법에 매몰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율법 신앙은 기본적으로 종의 영에서 나온 것으로, 자책감의 노예가 되게 합니다.
율법주의는 신앙의 본질을 억압하는 종교적 형식주의에 불과합니다.
기복신앙과 특권의식의 위험
독실한 신앙생활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겠다고 애쓰는 것이 때로는 시련을 믿음 부족 때문이라고 여기는 이중적인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특별히 선택받았다고 믿는 배타적인 선민사상이나 특권 의식은 예정론에 대한 오해이며, 하나님의 구원 은총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큰 믿음: 부스러기로도 충분함
가나안 여자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을 예수님께서 큰 믿음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이는 자신의 삶이 은총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아는 영적인 태도입니다.
믿음의 여정과 실천적 삶
믿음의 싸움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싸움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과정을 걸어갑니다. 생명이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듯이, 우리의 믿음도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길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는 것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선물이며,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최고로 아름답고 선하다는 사실을 실질적으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기도의 참된 영성
기도의 영성은 하나님께 자기의 삶을 실제로 맡기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참된 기도의 영성은 자기의 욕망 실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임하기를 바라는 데 무게가 있습니다.
영적 긴장감의 유지
종말론적 생명에 참여하는 희망을 가진 사람은 거룩한 긴장감을 치열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는 바울의 권면은 영적 긴장감으로 가득한 삶을 살기 위함이며, 그것만이 참된 신앙인의 삶의 자세입니다.
낮은 자리로의 임함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는 한 가지 조건은 우리가 낮은 곳에 자리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들어서지 못하면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힐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맺으며
진정한 믿음과 신앙은 우리의 노력이나 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며, 동시에 우리가 평생에 걸쳐 자라가야 할 영적 여정입니다.
무익한 종의 자세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며, 오직 그분의 은혜만을 바라는 것. 기적이나 능력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마음을 두는 것. 그리고 낮은 자리에서 부스러기 은혜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이러한 믿음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실천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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